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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듯 천천히>는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TV프로듀서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자신의 일상을 서술한 에세이집인데요.


그의 영화들만큼이나 담담한 문체가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1995년 처음으로 연출한 <환상의 빛>으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골든 오세라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연출한 작품마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한 일본의 명감독입니다.


특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칸 영화제에서의 남다른 수상복으로도 정평이 나있는데요. 2004년 <아무도 모른다>로 영화제 사상 최연소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했고, 이후 2009년 배두나가 주연한 <공기 인형>으로 주목할만한 부문에 출품했으며, 2013년에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2015년 발표한 <바닷마을 다이어리> 역시도 경쟁 부문에 진출해, 명실상부한 칸이 사랑하는 감독으로써 입지를 공고히 했습니다.





멈춰 서서 발밑을 파내려가기 전의 조금 더 사소하고, 조금 더 부드러운 것. 물 밑 바닥에 조용히 침전된 것을 작품이라 부른다면, 아직 그 이전의, 물 속을 천천히 유영하는 흙 알갱이와 같은 것. 이 에세이집은 그런 흙 알갱이의 모음이다. 아직 작은 알갱이 그 하나하나는 분명 몇 년이 지난 후, 다음 그다음 영화의 싹이 뿌리가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의 영화가 얼마나 오랜 시간의 디테일한 관찰을 통해서 만들어졌는지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제작할 때는 '병원에서 아기가 뒤바뀌어서 성장한 이후에 각자의 부모에게 돌아간다.'라는 다소 파격적인 설정을 최대한 이질감 없이 현실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생활 속 디테일을 하나 하나 겹겹이 쌓아 올리는 데 중점을 뒀다고 하는데요.


물 바닥에 침전된 작은 흙알갱이를 하나 하나 모아서 영화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그의 인내심을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작가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부자유를 받아들이는 존재라는 체념적인 태도, 그리고 그런 부자유스러움을 재미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감각. 이것이야말로 다큐멘터리적으로 보인다고 나 스스로는 분석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렇게 현실감 있는 이야기를 묘사해낼 수 있는 힘은 그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오랜 시간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써 쌓아온 내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특히 책을 읽다 보면 그가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다가 극 영화를 연출한 직후에 느꼈던 일들을 서술한 부분이 나옵니다. 있는 현실 그대로를 찍는 다큐멘터리의 매커니즘에 익숙했던 그는 배우와 각본으로서만 촬영되는 극 영화의 매커니즘에 당황하는데요.


하지만 이후 자신다큐멘터리로 쌓아온 강점을 극 영화를 찍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연출론을 정립하게 됩니다.


다큐멘터리와 극 영화의 특성들을 골고루 배합시켜 자신만의 연출론으로 만든 이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영화가 그렇게 현실적이고 섬세한 시선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이제 영화는 내 품을 떠나 날아간 민들레 씨앗 같은 것일 뿐, 착지한 곳에서 뿌리를 내려 꽃을 피워줬으면 하는 바람만 남아 있을 뿐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일상의 이야기를 담아낸 <걷는 듯 천천히>

사람과 영화를 향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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