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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과 하루 만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건물의 모든 것들이 익숙해졌다. 팔이 붕붕 떠다니는 시험관을 지켜보는 것도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점차 쇠붙이로 몸이 잠식되다 보니 감정까지 메말라가는 느낌이었다. 거미 의사도 처음에는 좀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자신이 맡은 업무에 집중했다. 승용은 다시 잠이 들었고, 또다시 켄타우로스의 꿈을 꾸었다. 그렇게 저주했지만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 아련하게 남아있는 것은 반인반수의 신화 속 존재였다. 그 만이 지금 승용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었다.

 

 

 


 

 승용은 깨어난 이후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점차 선명해지는 시야에 거미의사가 라벨지에 오늘 날짜를 적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라벨지는 팔 하나가 유유히 떠다니는 시험관에 잘 부착되었다. 승용의 입가에는 씁쓸한 웃음만이 감돌았다.

 

 "오른손은 상태가 좀 더 괜찮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200만 원을 더 넣었습니다."

 

 우식은 흰봉투를 건네며 말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두툼했다. 승용이 봉투 안을 살펴볼 때도 우식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하게 승용을 볼 뿐이었다.

 

 "꽤나 의외였습니다. 보통은 이렇게 하루 만에 다시 신체를 팔거나 하지 않는데 말이죠."

 

 우식은 담배를 꺼내 물며 말했다. 봉투 안을 들여다보던 승용은 놀란 눈으로 우식을 보았다.

 

 "1700만원이군요?"

 

 승용의 말에 우식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하루 밖에 안 지났으니까, 원금과 이자 빼는 것은 어제 지불한 거에 같이 묶는 것으로 하시죠."

 

 우식은 큰 인심 쓰듯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찌 되었듯 상관이 없었다. 300만 원에서 1700만 원이 되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 아닌가? 우식은 알 수 없는 힘이 가슴속에서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할 때 우식이 피고 있던 담배를 끄며 승용을 지긋히 노려보았다.

 

 "곧 다시 만날 것 같군요. 이번에는 다리겠죠?"

 

 우식은 입꼬리를 올리며 이죽거렸다. 승용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식의 말이 맞는지도 몰랐다. 승용은 우식이 경험한 그 모든 케이스 중에서 단계절차를 좀 빨리 밟아가는 케이스일 것이다. 낭떠러지를 향해 빠르게 돌진하는 케이스.

 

 "그래도 아직까지 나에게 한 달간의 말미는 유효한 것이겠죠?"

 "아무렴요."

 

 우식은 어깨를 다시 한번 으쓱이고는 자리로 돌아가 홀로그램 TV를 켰다. 여전히 코미디 프로가 나오고 있었고, 우식은 TV프로그램에 집중한 듯 떠들썩하게 웃기 시작했다. 다만 승용이 방문을 열고 나갔을 때는 지난번처럼 그렇게 박장대소의 웃음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다. 승용의 눈은 다시 검은 가리개로 씌워졌고,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차에 탑승했다.

 


 

 용택은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이미 돈줄이 말라있을 승용의 사정을 뻔히 아는데, 밀린 월급의 일부랍시고 내미는 승용의 흰 봉투를 보고는 말문이 말힌 듯 멍하니 서 있었다.

 

 "퇴직금입니다."

 "예?"

 

 용택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승용이 내민 흰봉투를 다시 한번 내려다보았다.

 

 "이것밖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니, 사장님...... 전......."

 "그리고 내일부터는 안 나오셔도 됩니다. 만약 나중에 다시 기회가 되면 그때 와주십시오."

 

 용택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손사래를 치며 거부했다. 그는 이틀 만에 변해버린 승용의 두 팔을 보고는 모든 상황을 눈치챈 듯 보였다. 승용은 받지 않으려 손사래를 치는 그에게 끝까지 돈을 쥐어주었다. 결국 용택은 흰 봉투를 받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런 그를 내버려 두고 승용은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며칠 전 우식의 구두에서 떨어진 흙먼지들이 어지럽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인가? 다른 공장들처럼 AI와 안드로이드로 생산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할까? 그러기에는 현재 가진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처음 그 변화들이 일어났을 때 빠르게 전환시켰더라면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현재 가진 돈은 너무 없었다. 은행 대출의 일부를 갚는다면 다시 더 많은 금액을 대출할 수 있지 않을까? 분명히 방법은 있을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지 않는가. 분명히 방법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을 찾은 뒤에는 모든 것을 올인하면 된다. 승용은 하나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모든 경우의 수를 놓고, 하나하나의 시뮬레이션을 그려나갔다.

 


 

 1700만 원으로 회사를 소생시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필요로 하는 공장의 전면 자동화 AI시스템은 승용의 돈으론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 추가 대출을 알아보려고 했지만, 이 것이 화근이었다.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개인회생대출을 알아보려고 했다가 도리어 은행에서 빌려간 예전 대출에 대한 상환독촉만을 받을 뿐이었다. 철옹성처럼 단단한 은행의 벽 앞에 승용은 그 어떤 것도 시도해하지 못하고 이자를 제때 납부하겠다는 확인만 했다. 그리고 어느새 돈냄새를 맡았는지 다른 금융업체에서도 빛 독촉을 해왔다. 우식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빌린 빚들이었다. 결국 그렇게 1700만 원은 먼지처럼 공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허망했다. 자신의 두 팔을 내어가며 얻은 마지막 기회는 그렇게 사라졌고, 거대한 허무와 상실만이 승용을 덮쳤다.

 

 은행 측에서는 우식과 마찬가지로 얼마간의 말미를 주었다. 그사이 대출금의 일부를 갚지 못한다면 현재 승용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완전한 압류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모든 압박에 마지막 보금자리인 집도 버텨내지는 못할 것이다. 이렇게 상황이 급박해짐에 따라 승용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자신의 몸뿐이었다. 살아 숨 쉬는 피가 흐르는 자신의 몸. 이제 이 것만이 남아있었다.

 


 

 다시 우식을 찾아갔을 때는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옅은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승용의 다리로 시선을 옮겨갔다. 이 다리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승용의 머릿속 생각이 어지럽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다리를 한쪽만 팔게 되면 균형감각에 이상이 와서 걷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우식의 이야기를 듣고 두 다리를 모두 팔고 온 날. 자신의 책상 앞에는 흰 봉투가 놓여 있었다. 예전에 용택에게 주었던 그 봉투였다. 안에는 돈이 그대로 들어있었고, 편지도 한 장 들어있었다. 어서 빨리 모든 것을 정리하고, 팔을 되찾아오라는 당부의 말이었다. 편지를 읽던 승용의 두 빰 위로 뜨거운 물이 흘러내렸다. 절뚝거리며 자신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꼬여버린 실타래는 이미 너무나도 엉켜 있었다. 자신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인지도 모른다. 두 번째 케이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제대로 인지조차 되지 않았다. 승용은 자신의 몸 전체를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엄연히 따지면 그는 인간이라고도 말하기 힘들었다. 인간의 머리를 지닌 기계. 지난 몇 달 그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팔아버렸다. 겉이 바뀌니 내부 장기에 대한 미련은 하나도 없었다. 또한 몸의 일부가 하나하나 사라져 갈 때마다 그가 알고 있던 모든 것들도 하나씩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아내는 두 아이와 함께 떠나버렸고, 집은 경매에 넘어가버렸다. 승용 자신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머리 아래에 있는 고철만이 전부였다.

 

 승용이 다시 우식을 찾았을 때는 그는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승용씨도 참 대단하십니다. 또 뭘 팔러 오셨습니까? 이제 남아 있는 것도 없을 텐데요?"

 "내 머리......"

 "예?"

 "머리가 가장 비싸다고 들었소."

 

 우식은 물끄러미 승용을 빤히 보았다.

 

 "그 이야기는 또 어디서 들었습니까? 참 대단하시네요. 이제 아주 전문가가 다 되셨군요?"

 "가장 비싸다는 게 사실입니까?"

 

 승용의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는지 우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가장 비쌉니다. 가장 비쌀 수밖에 없지요. 그건 팔다리와 다르니까 말이죠. 사람의 머리는 그 어떤 것으로도 만들 수가 없으니까요. 요즘에 뭐 AI이니 이런 게 있다 해도 오리지널 인간의 머리와 비교할 건 못 되지요."

 "그렇다면 머리가 통째로 거래되는 겁니까? 뇌 같은 것도 다 같이 말입니다."

 "글쎄. 뇌가 어디로 유통되는지는 잘 몰라요. 듣기로는 연구소 같은 곳에 팔린다는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그 부분은 정확히 잘 모릅니다. 얼핏 듣기론 뇌를 제외한 부분은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나 노인들이 주로 사간다는 말을 듣긴 했습니다. 아무튼 내가 아는 건 인간의 몸 중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된다는 건 확실하다는 것이죠."

 

 우식은 가장 비싸다는 것에 힘주어 말했다.

 

 "그렇지만 머리를 건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알고는 있으시죠? 그 말은 승용씨의 목숨을 건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알고 오셨습니까?"

 

 승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식은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승용의 몸 전체를 눈으로 훑었다. 그런 뒤 잠시 생각에 빠졌다. 여태껏 보아왔던 자기의 유불리를 계산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렇군요. 뭐 좋아요. 본인 결정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가 없지만...... 대체 왜 팔려고 하는 것이요?"

 "내게 남은 빚을 모두 청산해 주길 원합니다."

 "모든 빚이라......"

 "당신에게 빚진 것 말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내 가족을 독촉하지 마시오."

 

 우식은 잠시 대화를 멈췄다. 뭔가에 대해 골몰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빚이 한 두 개가 아닐 텐데? 은행대출도 꽤 많이......"

 "그런 건 당신이 관여할게 아닙니다."

 "하긴 뭐...... 그런 걸 내가 알 필요는 없죠. 좋아요. 그렇게 하지요."

 "그전에...... 나에게 먼저 기회를 주십시오."

 "기회라니?"

 "난 이미 당신에게 5000만 원 정도 갚았습니다."

 "그렇죠. 이제 한 5000만 원 정도 남았지요. 그걸로 머리를 팔아 갚으면......."

 "아니, 머리는 5000만 원이 아니라 최하가 8000만 원인 걸로 아는데."

 

 승용의 말에 우식은 당황한 듯 멈칫거렸다. 승용은 우식을 만난 이래로 그가 이렇게 당황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던 냉혹한 눈빛으로 승용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승용은 그게 우식의 진짜 얼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마주한 적 없었던 진짜 본모습.

 

 "꽤나 많이도 알아오셨군요."

 "이제 당신 말대로 전문가니까요."

 "그래, 현 시세가 8000만 원이라고 칩시다. 그러면 남은 금액으로 뭘 하려고 합니까? 가족들한테 줄 겁니까? 남은 은행 대출이라고 갚게요? 그걸론 택도 안 될 텐데......"

 

 승용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떨려오는 그의 심장 박동은 이미 기계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인간이었던 몸처럼 역동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지난날 수많은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내와 두 아이. 직원들. 회사. 그리고 켄타우로스.

 

 그 순간 승용은 자신의 가슴속에 느껴지는 단 하나의 직감에 모든 것을 던지기로 결심했다.

 

 "정확히 이야기해 보세요. 뭘 원하는 것이요?"

 

 우식은 재촉하듯 물었다.

 

 "한 방을 원합니다."

 "한 방이라......."

 "내 삶을 되돌려줄 단 한 번의 기회.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게 만들어줄 기회 말이요."

 

 그 순간 우식은 미친 듯이 웃었다. 처음 그가 신체를 팔라고 했을 때 짓던 그 웃음이었다. 한참을 웃던 우식은 애써 숨을 고르며 승용을 빤히 보았다. 그 눈빛은 전에 없이 빛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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