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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에 개봉한 영화 록키(Rocky)는 스포츠 영화 이상의 상징적 작품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영화라고 불리는 영화인데요. 기존 스포츠 영화가 가진 클리쉐였던 주인공은 항상 승리하거나 챔피언이 된다는 공식을 깨고, 비록 게임에 졌더라도 승리한 것 이상의 성취를 이뤄낸다는 테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울리는 진한 감동을 선사하면서 레전드급 스포츠 영화라는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되었죠. 저도 유튜브에서 가끔씩 마지막 장면을 볼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진한 감동을 받는 느낌입니다. 록키는 제작비 100만 달러 남짓의 저예산 영화가 2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기록하고, 무명에 가까웠던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을 세계적 스타로 만든 기적 같은 이야기는 그 자체로 영화만큼이나 극적인데요. 아래에서는 <록키 1>의 흥미진진한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할게요.

 

 

 

1. 한 편의 경기에서 태어난 이야기

 

1975년 3월, 실베스터 스탤론은 당시 무명 배우로 헐리우드에서 작은 배역만 전전하던 시절이었는데요. 생활은 궁핍했고, 집세조차 내기 어려워 애완견 버트키스를 팔아야 할 정도였다고 해요. 그러던 중 그는 TV에서 복싱 경기 무하마드 알리와 척 웨프너의 대결을 보게 되는데요. 누구도 이길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웨프너가 알리를 상대로 15라운드 끝까지 버티는 모습을 보며 스탤론은 강렬한 영감을 받게 되죠. 그리고 그는 경기 직후 3일 만에 밤낮으로 몰입해 90쪽 분량의 시나리오 초안을 완성하는데요. 그것이 바로 <록키>의 시작이었죠. 스탤론은 “평범한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때, 그것이 진정한 승리다”라는 메시지가 담긴 시나리오를 여러 영화사에 들고 다녔지만 대부분의 제작자들은 그를 무시했습니다.

 

 

 

2. “주연은 내가 해야 한다”

 

시나리오는 점차 관심을 받기 시작했으나, 스튜디오는 한 가지 조건을 걸었어요 시나리오는 좋지만, 주연은 유명 배우여야 한다는 조건이었죠. 당시 제안된 배우는 로버트 레드포드, 라이언 오닐, 제임스 칸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탤론은 완강했죠. 록키는 내가 써서 내가 만든 캐릭터다. 내가 연기하지 않으면 영화는 만들지 않겠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했죠. 결국 제작사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는 주연을 맡긴다면 제작비를 100만 달러 이하로 제한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는데요. 스탤론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출연료로 단돈 2만 달러를 받았지만, 훗날 인생을 바꿔놓는 신의 한수의 결정을 한 것이 되었습니다.

 

 

 

3. 현실의 고난이 담긴 저예산 촬영

 

영화의 제작 환경은 열악했는데요. 촬영 일정은 고작 28일이었고, 예산은 부족했어요. 그래서 영화의 많은 장면이 게릴라식 촬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록키가 새벽 거리를 달리는 장면은 실제 필라델피아 시내를 달리며 찍었는데, 도로 통제도 없이 자연스러운 시민 반응을 그대로 담았죠. 록키가 시장을 지나며 한 노점상으로부터 오렌지를 던져받는 장면 역시 즉흥적으로 일어난 실화였다고 해요. 또한 예산이 부족해 엑스트라도 대부분 친구나 가족이 맡았다고 하는데요. 애드리안 역의 탤리어 셔라이어는 실제로 감독 존 G. 애빌드센의 추천으로 마지막에 합류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내성적이고 조용한 이미지가 완벽히 애드리안에 맞았고, 결과적으로 록키와의 대조적 케미를 만들어냈죠.

 

 

 

4. 필라델피아의 록키 스텝 탄생

 

영화의 가장 하이라이트 명장면으로 꼽히는 장면은 록키가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을 전력 질주해 올라가 두 팔을 번쩍 드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장면은 록키에서의 명장면 뿐만 아니라 1970년대 미국 영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죠. 당시엔 드론이나 크레인 장비가 없었기에, 카메라맨은 스테디캠(steadycam)이라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장비를 사용했는데요. 스테디캠은 촬영감독 개럿 브라운이 직접 개발한 장비였으며, 록키가 계단을 오르는 장면을 부드럽게 따라가며 촬영할 수 있었죠. 이 기술은 이후 헐리우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고, 스테디캠의 상용화를 이끈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필라델피아 미술관 앞의 그 계단은 록키 스텝(Rocky Steps)이라 불리며 수많은 팬과 관광객이 그 장면을 재현하기 위해 찾는 명소가 되었죠.

 

 

 

5. 음악과 감동의 조화

 

록키의 감동을 배가시킨 요소 중 하나는 바로 빌 콘티가 작곡한 음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요. 대표곡 〈Gonna Fly Now〉는 단순한 트럼펫 리프와 반복적 리듬으로 이뤄졌지만, 밑바닥 잡초같은 록키의 불굴의 의지를 완벽히 표현한 곡이었죠. 스탤론은 예산 문제로 유명 작곡가를 쓸 수 없었고, 신예였던 콘티에게 기회를 줬는데요. 결과적으로 이 음악은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고, 영화 음악 역사에 길이 남게 됩니다. 특히 훈련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록키 정신을 상징하는 사운드트랙으로 작용되었으며, 이후 수많은 영화와 광고, 스포츠 이벤트에서 이 곡이 사용되며 도전과 극복을 상징하는 곡이 되었습니다.

 

 

 

6. 개봉 전의 우려, 그리고 기적 같은 성공

 

영화가 완성되었을 때, 제작진조차 흥행을 기대하지 않았다고 해요.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제작된 제작 여건과 무명이었던 스탤론의 인지도 때문이었죠. 하지만 1976년 11월 개봉 후 입소문은 폭발적이었는데요. 관객들은 현실적인 복서의 인생, 따뜻한 사랑 이야기, 이기지 않아도 가치 있는 싸움이라는 메시지에 열광하게 됩니다. 이렇게 폭발적인 흥행세를 보인 록키는 북미에서만 1억 1천만 달러, 전 세계적으로 2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1976년 최고 흥행작이 되는데요. 그리고 197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편집상 등 3관왕을 차지하며 예술적 성취까지 인정받게 되죠. 스탤론은 명실상부 헐리우드의 스타가 되었고, 기적 같은 신데렐라 스토리라는 찬사를 받게 됩니다.

 

 

 

7. 스탤론의 실제 삶과 영화의 평행선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 록키의 삶이 스탤론 자신의 인생과 완벽히 겹친다는 것인데요. 둘 다 가난했고, 인정받지 못했으며, 단 한 번의 기회를 잡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죠. 영화 속 록키가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를 상대로 “끝까지 버티는 것”을 목표로 싸웠듯, 스탤론도 헐리우드에서 버티고 또 버텼습니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록키는 내 자전적 이야기다. 나는 록키가 되었고, 록키는 나였다."라고 밝히기도 했죠. 그의 이 말은 영화가 픽션의 개념을 뛰어넘어 인내와 믿음, 그리고 자기 구원의 서사였음을 보여주었는데요. 관객들도 이러한 진정성을 느꼈기 때문에, 영화의 엄청난 성공과 함께 불멸의 명성을 얻은 것이 아닐까 싶네요.

 

 

 

8. 록키와 버트키스의 따뜻한 후일담

 

흥미로운 비하인드로, 영화 속 록키의 애완견 버트키스는 실제 스탤론이 키우던 개였다고 해요. 앞서 언급했듯, 그는 가난 때문에 이 개를 단돈 50달러에 팔았으나, 영화가 만들어질 즈음 어렵게 돈을 모아 250달러를 주고 되사왔다고 하는데요. 이후 버트키스는 영화에 직접 출연했고, 스탤론은 “그 개는 나의 가족이자, 이 영화의 상징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9. 록키 정신이 남긴 유산

 

록키는 이후 40년 넘게 이어지는 시리즈의 출발점이 되었는데요. 1980~2000년대에 걸쳐 <록키 Ⅱ~Ⅵ>, 그리고 스핀오프 시리즈 <크리드>까지 이어지며, 그 정신은 세대를 초월해 전해지고 있어요.

 


 

록키의 제작 과정은 헐리우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언더독 스토리로 남았는데요. 수많은 영화가 록키를 오마주했지만, 그 진정성은 여전히 유일무이하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인간의 존엄을 보여준, 영화사 최고의 희망 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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