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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992년 작 <붉은 돼지>를 보았는데요. 예전에 봤지만, 최근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하였습니다. 예전에 본 영화나 드라마 등을 시간이 흘러 다시 봤을 때 완전히 새로운 느낌을 줄 때가 있죠. 제게는 붉은 돼지가 그런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다른 작품에 비해 붉은 돼지는 서사가 단순하며, 별다른 갈등 구조가 없어서 다른 작품에 비해 그다지 큰 감흥은 없었는데요. 하지만 최근 다시 보니 그 특유의 정서가 너무 좋아 이제 지브리 애니메이션 중 가장 최애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1992년 일본에서 개봉한 붉은 돼지는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개봉한 바 있는데요. 작품의 주된 스토리는 1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 공군의 에이스 파일럿이었던 마르코 파곳이 전쟁의 참혹한 참상과 파시즘에 대한 환멸을 느낀 뒤, 파일럿을 그만두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데요. 그 과정에서 원인 모를 이유로 돼지로 변하게 되죠. 이후 하늘의 해적들을 잡는 현상금 사냥꾼인 포르코 롯소로 살아가다가 맘마유토단을 포함한 공적연합들과 대립하는 구조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붉은 돼지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인물들간의 갈등 구조가 크지 않다는 것인데요. 주인공 포르코와 대립하는 주축인 공적연합이 있긴 하지만 대립각은 그렇게 크지 않죠. 오히려 작품 전반에 걸쳐 포르코는 개인과의 대립보다는 파시즘이라는 전체주의와 맞서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요. 대립각을 세워야하는 인물들간의 갈등 구조가 적어 다소 밋밋하게 진행된다는 점이 있긴 하지만, 지난 과거의 추억을 상기시키는 아련한 정서가 다소 빈약한 갈등 구조를 상쇄시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아련한 정서야말로 붉은 돼지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네요.

 

 

 

 

붉은 돼지의 가장 명장면이라고 한다면 작중 포르코가 의식을 잃고 비행기로 이루어진 대열을 목격하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적군과의 교전을 한 이후에 동료들을 잃고, 구름으로 이루어진 평야에서 깨어난 포르코는 셀 수 없이 많은 비행기들이 어딘가를 향해 끝없이 나아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는데요. 그건 교전 중 사망한 동료들의 영혼들이었죠. 죽은 동료 파일럿들의 영혼들을 보게 된 포르코는 전쟁의 참혹한 참상과 인간에 대한 환멸과 불신, 인생 무상 등의 감정을 느끼고 최고 파일럿의 길을 포기하게 됩니다.

 

 

 

 

붉은 돼지에서 가장 모호한 설정이라고 한다면 포르코가 돼지로 변한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작중 설정으로는 마법에 걸려 돼지로 변했다고 나오며, 뚜렷한 이유는 나오지 않죠. 그리고 이야기 중간 중간에 포르코가 마법에서 일시적으로 깨어나 인간으로 돌아오는 장면도 나오지만, 왜 한 번씩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어요. 중반 부분에 포르코의 옛 전우인 공군 소령, 페라린이 찾아와 공군으로 복귀하기를 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포르코는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로 사는 편이 낫다며, 옛 친구의 부탁을 거절합니다. 포르코가 돼지와 인간 사이를 오고가는 장면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삶에 미련을 버렸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엔 인간으로써 살아가고픈 미련을 은유적으로 잘 표현한 장면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붉은 돼지 특유의 아련하고 쓸쓸한 정서가 더욱 크게 부각될 수 있었던 건 히사이시 조의 아름다운 OST 때문이기도 한데요. 지브리 애니메이션 특유의 정서를 구현해낸 인물 중 한명인 히사이시 조는 붉은 돼지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힘껏 발휘합니다. 그 중 <돌아오지 않는 날들>이란 곡은 작품 특유의 정서를 표현한 곡이 아닐까 싶은데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언론과의 한 인터뷰에서 삶에 지쳐 뇌세포가 두부가 된 중년남자를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고 한 적이 있는데요. 붉은 돼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꿈꾸는 로망과 낭만을 잘 표현한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이상 오늘 준비한 붉은 돼지 리뷰 정보는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방문 감사드리며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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